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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순이 자급자족 생활🥖

반죽한다, 기다린다, 빚는다, 굽는다

by 빕비빅 2021. 5. 26.

 

나는 빵 굽는 공순이다. 정확히 말하면 제과도 하고 제빵도 하지만 여기선 그냥 빵이라고 통칭하겠다. 

베이킹을 시작한 건, 아마 동생을 따라서였던 것 같다. 방과후 교실로 베이킹 수업을 듣던 초등학생 동생을 따라 집에서 이것저것 쿠키를 구울 때 아직 작아서 혼자 하기 힘에 부치는 동생을 도와주면서 처음 베이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베이킹을 혼자서 해보았을 때는 재미 삼아 간단한 쿠키들만 구웠었는데, 하나씩 새로운 걸 도전해나가다보니 어느새 지금은 쿠키류는 물론이고 타르트, 파이, 케이크, 스콘부터 발효빵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구울 수 있게 되었다(얼마전부터 굽기 시작해 발효빵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주로 youtube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레시피를 자세히 메모해두고, 그대로 따라하면서 혼자 배운다.  

기본 쿠키부터 시작해 하나씩 도전해나가다보니 어느덧 새로운 빵이나 먹고 싶은 빵을 보면 '아, 딱 한 개만 사먹어?' 이런 생각보다는 '아, 이번 주말에 한 번 구워봐? 재료 주문해, 말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금 수고롭지만 내 정성을 담고 기다림이라는 마법을 부리면 따끈하게 내 손에 쥐어지는 빵 맛을 한 번 맛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것 같다. 사실,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먹는 것이 더 값싸게 치는 빵들이 있다. 주로 디저트류들. 하지만 빵 가격을 보면 사야하는 재료비는 생각나지 않고 만들어먹는 게 더 싸게 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쩌리오.

베이킹에는 정성도 들어가지만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재료들을 계량해 준비해 두고, 잘 넣어두었던 도구들도 하나씩 꺼내어 닦아주고 나서야 비로소 빵 굽기를 시작할 수 있다. 레시피를 따라 하나 둘 재료들을 넣어서 반죽해주고, 숙성한다. 숙성/발효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오븐을 예열해두고, 썼던 집기류와 조리대를 치워주고, 남은 재료들을 다시 잘 정리해 넣어둔다. 오븐에 들어갈 준비가 된 반죽을 꺼내 비슷한 크기로 나누어 하나, 하나 세심하게 모양을 잡아준다. 오븐에 넣고 나면 다시 또 기다림. 노릇노릇 황금빛을 기다리다 보면 반나절은 훌쩍 지나가 있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냐,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머리는 그저 레시피가 시키는 대로만 생각하면 되니 반쯤은 무념무상의 상태로 묵묵히 베이킹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빵을 구우면서 요즘 고민거리를 곱씹어 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새로운 관점이 떠오르기도 하고, 괜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집에서 베이킹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베이킹 레시피는 항상 굽고 나면 혼자서는 절대로 다 먹을 수 없는 양이 나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민이 있으면 혼자 방에 틀어박히기 쉬운 나를 위해, 그럴 때마다 일부러라도 무언가 달콤하고 기분 좋은 것을 구워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한다. 별 것 아닌데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내 사람들을 보면 울적함은 날아가버리고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취미 베이킹에 단점이 있다면, 그건 너무 맛있어서 자꾸 손이 가고, 살이 찐다는 . 손도 편이라 레시피의 2, 3배로 굽기 일쑤인데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눠주는( 혼자만 없지)걸로는 역부족이라 요즘은 노버터, 노계란, 노설탕 다양한 건강빵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보고 있다. 버터, 설탕 제과제빵의 기본 재료를 빼거나 줄이고 만들어야 하니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정이 들어가지만, 건강하고 담백한 자연스러운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저 파는 빵보다 맛있는 빵을 먹기 위해 하나씩 구워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그래도 베이킹에 빠지게 된 이유를 꼽자면 밀가루, 달걀, 설탕, 버터/오일 4가지 기본 재료에 팽창제나 부재료 등을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수만 가지 조합으로 다양한 맛과 풍미,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반죽 숙성에 따라 맛과 모양, 식감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고, 할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지면 원인을 찾아보면서 계속 도전하는 게 마치 실험과 비슷해서 더 재미를 느꼈다. 번아웃이 한 번 크게 왔었을 때, 집에서 누워서 유투브만 보다가 우연이 다시 홈베이킹 영상을 보면서 '그래, 이거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먹고 싶었던 쿠키를 구웠던 적이 있다. 이것저것 하고 있는 건 많은데,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그저 바쁜 일상에 지쳐버렸던 그때부터, 노력과 적당한 기다림이 있으면 내가 한 노력만큼의 결과를 내 손에 안겨주는 베이킹에 푹 빠지게 된 것 같다. 내가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도 언젠간 이런 달콤한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고 믿으면서, 지금은 그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뿐이라고 위로하면서, 오늘도 달콤한 쿠키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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